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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독일, Wiegand-glas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 : 김현수)
  • 작성일2019/04/01 10:51
  • 조회 1,892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온, 독일 생활”
 

    지난 해 영국 교환학생을 하면서 영어 공부를 계속 했지만 일상 생활 영어만 쓰다 보니 스스로도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무엇보다도 회사에서 비즈니스 영어를 써 볼 경험을 하고 싶었고, 일 하면서 받은 봉급으로 그 부근의 나라를 여행하고 싶기도 했다. 또한 산업공학 전공으로 내가 일을 해보면 전공에 대해 내 주관이 더 뚜렷해 질 거라 생각했다.

     먼저 3월말에 IAESTE KOREA에 지원서를 접수하였다. 첨부하여야 할 서류가 많았지만 그 당시 첨삭 받으면서 써놓은 영문 이력서가 후에도 여러모로 유용했다.  5월 초에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고, 7월에 비자를 신청하고 7월 말에 출국하였다. 처음 지원할 때는 영어권 국가인 영국에 가고 싶었으나 영국 교환학생이기 때문에 지원이 곤란하다는 것을 듣게 되었고, 그나마 영어가 잘 통한다는 독일로 알아보았다. 독일에 몇몇 대기업의 Job Offer가 있었는데, 전공이 달라 한국에서 추천을 받을 수가 없었다. IAESTE KOREA와 상담하여 산업공학 전공으로는 Wiegand-glas를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고 그렇게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되었다. 영어 중급과 독일어 중급 이상을 요구하였지만 독일어는 초급이며 독일어 공부를 계속 하고 있다는 식으로 지원서를 작성하여 마침내 채용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독일어 책을 사서 공부를 개인적으로 시작하였지만 독일 가기 전까지 인사말만 겨우 익힌 수준이었다. 지금 그 점이 많이 아쉽다. 지원하는 국가의 언어 공부를 많이 했었다면 인턴 생활에서 훨씬 수월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Wiegand-glas라는 회사는 유리병을 만드는 회사이다. Wiegand라는 창업주는20세기 초반에 이 회사를 설립하였고, 구 동독과 구 서독 지역에 공장이 많이 있었으나 1960년도 동독과 서독의 교류가 완전히 끊긴 후에 동독 지역의 공장은 모두 몰수당하였다. 그 후, 서독의 공장을 계속해서 발전시켰고 지금은 독일 내 3개의 공장 단지를 포함하여  슬로바키아, 남아공화국을 포함한 8개의 지사를 가진 회사로 성장하였다. 지금은 창업주의 아들이 회사를 물려 받아 경영하는 사기업이다. 이 회사 직원 말로는 유리병 제조 기술에서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다. 처음에는 첨단 산업이 아니다 보니 개인적으로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었는데 생각보다 공장이 첨단화 되어 있어 놀랐다. 포스코에서 이제 도입하려고 하는 Digital factory의 개념을 ABB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벌써 적용하고 있었고, 하루에 4백만 개의 유리병을 찍어내는 그 규모에 비해 일하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생산에서 포장까지 모든 것이 자동화였다. 80%의 원료가 재활용 병에서 얻어지는데, 무엇보다도 쓰레기 더미로부터 작은 병 조각을 색깔 별로 분류하여 재 생산해내는 기술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고도의 공장 자동화가 가능하니 독일이 제조 강국으로서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한 달간은 공장 내부를 돌며 그 생산 공정을 공부하였다. 나머지 기간 동안은 통계분석을 하였다. 본인이 있는 본사에는 4개의 공장이 있었는데, 가장 효율이 떨어지는 오래된 공장을 부수고 용광로부터 다시 건설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중의 공장을 설계하고 생산량을 예상하기 위해서는 현재 운용 되고 있는 공장의 통계 분석이 필수이다. 공장마다 연간 에너지 소비량이 같은 조건하에서 증가하는 비율, 재활용률과 에너지 소비량간의 상관 관계, 연간 추이 그래프에서 비정상적인 흐름이 발생한 것의 원인, 유리 색 품질 분석 추이 등을 맡았다. 모두 엑셀로 분석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수많은 그래프를 만들어야 했고 두 달 반 동안 파워 포인트를 이용하여 4번의 발표를 하였다. 이처럼 엑셀 그래프를 그리고 영향을 분석하는 작업이 내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생활이 지루할 뻔 했는데 다행히 앞방에 또래의 독일 대학생이 살아서 그 친구와 밥을 자주 같이 해먹고 주말엔 여행도 같이 다녔다. 그 친구 덕분에 나치 유태인 수용소, 남녀 혼욕 사우나, 바이마르(괴테의 도시), 에르푸르트 클럽, 뮌헨 옥토버페스트 등등 다양한 독일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또한, 틈틈히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비엔나, 독일 베를린, 노이슈반슈타인 성(신데렐라 성) 등 도 여행하였다.
     회사의 일에서 배운 것 보다 사실 분위기에서 배운 것이 훨씬 많다. 독일 인턴십을 오기 바로 전에 서울 포스코 본사에서 인턴십을 하였는데 그곳에서 느꼈던 전형적인 한국 기업의 분위기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독일에서는 9시에 티타임을 갖는데 커피 주전자를 나이가 제일 많으신 할아버지 팀장님이 항상 사내 주방에서 가지고 오신다. 다시 갖다 놓을 때도 막내가 하라는 법이 없고 모두 돌아가면서 한다. 그리고 사장이 사무실에 오더라도 제일 막내 직원은 여전히 다리를 꼬고 의자에 기대 앉아서 그냥 흘끔 쳐다 본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만큼 권위주의가 없고 직원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으며 피고용인은 고용인 만큼 회사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팀원간의 소통도 더욱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듯 했다. 어느 날 상사 직원에게 그러한 것들을 물어보니 자기는 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동등하다고 생각하며 동양인인 나에게는 어쩌면 무례하게 보이는 행동도 정작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내가 느낀 또 다른 점은 구 동독 사람들과 구 서독 사람들간의 표면화 되지 않고 남아있는 긴장이다. 구 서독 출신의 직원들과 회사 소유인 구 동독 지역의 공장을 둘러볼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공장이 생각보다 문제가 많자 나에게 조용히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동독 사람들은 아직도 사회주의 사상이 남아 있어서 공동 소유의 것을 부주의하게 관리하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것들이 해소 되려면 앞으로 적어도 5세대는 걸릴 거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은 기본적으로 동독 사람들을 위해서 너무 많은 세금을 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난 이것이 한국의 미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 독일 식 통일은 문제가 많다는 것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또한 우리나라 정당들의 통일 정책에 대해 생각 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짧은 두 달 반이 훌쩍 지났고, 글로 다 담지 못할 만큼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험들이 내 앞으로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인턴 생활을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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