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
벨기에, Ghent University - Research Group Applied Thermodynamics and Heat Transfer (UNIST 기계공학과: 최진솔)
- 작성일2019/06/25 14:01
- 조회 1,948
다사다난했던 벨기에에서의 3개월!
IAESTE를 학교에서 매년 하는 설명회를 통해 원래 알고 있었지만, 해외에 혼자 가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지원 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이 되었는데, 이대로 4학년이 되어 대학 생활을 마치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석,박사과정을 외국으로 가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유학생활을 미리 경험 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로 지원을 결심했습니다. 대부분의 Job Offer가 2월에 공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2월에 게이트 코리아 홈페이지를 자주 확인했습니다. Job Offer가 공지 된 후에는 목록을 보며, 평소 가고 싶었던 유럽에 있는 전공인 기계공학과 관련된 회사와 연구실을 추렸습니다. 그 후에는 목록이 크게 줄어 2개의 선택지가 남게 되었고, 2개의 회사/연구실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며 더 관심이 있는 벨기에의 엔진 관련 연구실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실제로 인턴십을 수행한 주제는 엔진이 아닌 열전달 관련이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열전달 또한 관심이 있었던 분야였기 때문에 경험 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선택 한 후에는, 그 연구실의 특성에 맞게 cover letter를 작성했습니다. 이 부분이 제일 어려웠지만 가장 많이 신경을 썼던 부분인데, 설명회에서 전공관련 성적이나 경험보다는 cover letter를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cover letter 외의 나머지 8~9개 가량의 서류를 준비하느라 개강 초에 정신 없이 움직였습니다. 제출서류 중, 영문으로 작성 해야 하는 서류들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무료 첨삭 서비스를 받아 두세 번 정도 검토를 했습니다. 제출 마감일 전에 서류들을 업로드 하고,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후기를 찾아보니, 서류 심사 결과를 통보 받기 까지는 2주정도, 면접심사 후 결과는 적게는 2주, 많게는 한 달이 넘게도 걸린다고 했습니다. 저는 서류를 제출한지 2주정도가 지난 후, 서류 통과 메일을 받았고, 그 메일을 받은 후 2일만에 면접을 보았습니다. 합격 메일을 받자마자 면접을 준비했고, 면접은 Skype를 통해 IAESTE KOREA관계자 분과 보았습니다. 화상면접, 영어면접 모두 처음이라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미리 준비한 예상질문과 답변을 떠올리며 15분 정도 면접을 하고 나니, 바로 다음날 한국 대표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이 왔습니다. 그 후에는 deposit과 nomination에 동의한다는 동의서를 제출한 후, 상대국의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몇 달 후에 답변이 왔다고 했는데 저는 3주 안에 답변이 와서 최종 합격이 되었습니다. 최종 합격만 하면 한시름 놓을 줄 알았는데, 합격 후에 해야 할 일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우선, 상대국에서 요구한 서류들을 작성해서 보내고, 비자를 받은 후 비행기 표를 예매해야 했는데, 벨기에 대사관은 서울에 있고, 학교는 울산에 있어서 학기 중에 비자를 받으러 자주 왔다 갔다 할 수가 없어, IAESTE에 양해를 구한 후, 여름방학에 비자를 받고, 나머지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학교에 2학기 휴학 신청을 하고, 원래 소속되어 있던 랩을 다니며 여름방학 동안 벨기에에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직 학부생에, 랩 경험도 별로 없는 제가 벨기에에 가서 제가 받을 월급에 해당하는 만큼의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별로 자신 없던 영어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컸습니다. 결국, 마냥 출국일을 기다리기보다는 미리 그 곳에서 할 일을 파악해서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익혀가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다닐 벨기에 Ghent University의 연구실에 메일을 보내 제가 가서 하게 될 일들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담당자 Marija가 저와 함께 일할 박사과정생 Sven을 소개시켜 주셨고, Sven은 저에게 자신의 논문을 주며 미리 읽어오라는 숙제를 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담당자 Marija는 출국 전주에 있던 제 생일 날에 맞추어 축하한다는 메일을 보내주었는데, 저에게는 그 일이 큰 감동이였습니다. 제가 아직 그 랩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저는 아직 한국에 있는데, 제 생일을 기억해서 메일을 보내준 정성과, 제가 이미 그 랩의 식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전에 들었던 두려운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벨기에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늦은 밤 벨기에에 도착을 해서, 공항근처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다음날 기차를 타고 제가 근무하게 될 Ghent University가 있는 Ghent로 이동했습니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버디인 Sam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숙소까지 안내해 주었는데, 2층짜리 가정집에, 1층엔 집주인이, 2층에는 저를 비롯한 세입자 세 명이 사는 공간이였습니다. IAESTE를 하면서 다른 것들은 괜찮았는데, 숙소에 대해서는 정말 많이 실망을 했습니다. 숙소는 감사하게도 버디가 알아봐 주었지만 출국 2주일 전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어 먼저 버디에게 메일을 보내보니, 그때부터 급하게 알아보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벨기에 Ghent University의 개강일과 겹쳐 숙소를 알아보기가 어렵다는 말과 함께 또다시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불안하게 연락을 기다리던 중, 출국 1주일 전이 되어서야 숙소 한 곳을 알아봤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Job Offer에 나와 있던 숙박비보다 100유로가량 비싼 숙소였지만, 출국이 1주일 남은 시점에 어렵게 구한 숙소를 다시 알아봐 달라고 하는 것도 힘들 것 같아 그 곳에 계약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구한 숙소였는데, 도착을 해서 방을 보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낡은 집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부엌, 샤워실 등은 너무도 더럽고 냄새가 났습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제공해 주기로 한 침구류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누렇고 냄새가 났습니다. 결국 침구류는 사비로 다시 샀고, 방 곳곳에 있는 거미를 잡고, 방 청소를 하며 며칠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인턴 파견을 나가는 학생들은, '나를 위해 숙소를 알아봐 주는 버디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연락을 기다리기만 하기보다는, 미리 먼저 메일을 보내 숙소를 꼼꼼히 점검해 보시라고 꼭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낯선 숙소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니, 첫 출근을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출근을 하니, 담당자인 Marija가 연구실의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다니며 인사를 시켜 주었습니다. 제가 근무한 연구실은, 한 교수님 밑에 5명 가량의 박사 후 과정생과 10명 이상의 박사 과정생이 건축학과의 연구실과 협력을 해서 연구를 하는 곳 이였습니다. 보통 대학의 연구실 하면 한 교수님 밑에 4~5명의 석,박사과정생들이 있는 것만 보았는데, 이렇게 큰 규모의 연구실에서 근무를 하게 된 것이 신기했습니다. 한 교수님 밑에 학생이 많으면 교수님이 지도해 줄 시간이 적어 좋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근무를 하며 보니 규모가 큰 연구실의 장점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박사후과정생들은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동시에 박사과정생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 주었고, 박사과정생들끼리는 서로의 실험에 대해 많은 도움을 주고 조언을 해 주며 서로 배우는 분위기였습니다. 또, 실험장비를 직접 설계하고 설치해 실험을 해야 하는 기계과 연구실의 특성상, 실험장비를 설치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데, 이 연구실은 기술자들이 따로 있어, 쇠를 자르거나 용접을 하거나 하는 위험하고 어려운 일들은 숙련된 기술자들이 대신 해 주는 시스템이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실험을 준비하는 시간이 단축되고, 자신의 실험에 꼭 맞는 실험기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석사과정생 한 명과 함께 Sven이라는 박사과정생의 실험을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실험 하는 것을 도와주면 될 줄 알았는데, Sven과 첫 미팅을 하고 나니, 저는 이 실험의 준비과정부터 시뮬레이션, 실험장비 만들기, 실험에 필요한 프로그래밍까지 실험의 전 과정을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부담감이 있었지만, 논문을 꼼꼼히 읽고, Sven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자세히 체크하며 한 단계, 한 단계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Solid Works, LabVIEW, ANSYS, MATLAB 등 다양한 툴을 다루었는데, 일부 툴을 사용법을 몰라 그 때 그 때 tutorial을 하며 익혔습니다. 처음에는 실험 경험도 전무하고, 저런 툴들도 잘 다룰 줄 몰라서 저는 못 할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하나 해내고, 칭찬을 받고 하는 과정에서 많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단기간 머물 인턴이라고 해서 무시하지 않고, 정말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고, 자신들의 학생처럼 많이 가르쳐 주신 랩 식구들 덕분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 원래는 예정돼있지 않던 일도 한 가지 더 하게 되었는데, 그 실험에서 제 아이디어가 실험을 성공시켜 많이 뿌듯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인턴이 거의 끝나가던 11월 말에는, Marija가 연구실 사람들을 모두 모아 International Evening을 개최해 주어, 한국 문화에 대한 발표를 하고, 각자 요리해온 전통음식을 나눠먹는 뜻 깊은 시간도 가졌습니다.
제가 인턴을 한 기간에는 다른 IAESTE 인턴들이 거의 떠나고 없던 시점이라, IAESTE Committee 에서 주최하는 큰 행사는 없었습니다. 가끔 술자리 같은 모임이 있었지만 저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다른 인턴 친구를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같은 숙소 친구들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주말에는 주로 주변국가나 다른 도시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벨기에는 유럽 교통의 중심지라 불리는 만큼 기차로 영국,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일 등 여러 나라를 다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인턴을 하던 기간에 유럽에 파리 테러 등 안타깝고 무서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11월 말에는 벨기에에 심각한 테러 경보가 났고, 학교나 관공서 등은 문을 닫는 등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았습니다. 저도 이 기간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예정되어 있던 여행들을 취소하며 상황이 괜찮아질 때 까지 기다렸습니다. 이 기간에는 많이 무섭고 외롭기도 했지만 이후 보안이 강화돼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제가 머문 3개월 동안 제가 외로워 하진 않을까, 불편한 건 없을까 하며 저를 배려해주고, 정말 식구처럼 여겨 준 랩 분들 덕분에 한국에서는 절대 느끼지 못할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물론 그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였습니다. 많이 외롭기도 했고, 문화 차이 때문에 힘들기도 했고, 생활이 힘들기도 했고, 일이 힘든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턴이 끝나는 지금은 좋았던 기억만 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에게 무슨 일이 닥쳐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확실히 3개월 전의 저와는 달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체험 후기를 보며 인턴 지원을 고민하는 학생들이나, 저같이 합격 후 걱정이 되어 후기를 찾아보는 학생들이나 모두 걱정하지 말고 대담한 마음으로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분명 힘든 일도 많을 것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문화를 체험 해 보는 것은 단순히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 될 것입니다!
IAESTE를 학교에서 매년 하는 설명회를 통해 원래 알고 있었지만, 해외에 혼자 가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지원 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이 되었는데, 이대로 4학년이 되어 대학 생활을 마치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석,박사과정을 외국으로 가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유학생활을 미리 경험 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로 지원을 결심했습니다. 대부분의 Job Offer가 2월에 공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2월에 게이트 코리아 홈페이지를 자주 확인했습니다. Job Offer가 공지 된 후에는 목록을 보며, 평소 가고 싶었던 유럽에 있는 전공인 기계공학과 관련된 회사와 연구실을 추렸습니다. 그 후에는 목록이 크게 줄어 2개의 선택지가 남게 되었고, 2개의 회사/연구실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며 더 관심이 있는 벨기에의 엔진 관련 연구실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실제로 인턴십을 수행한 주제는 엔진이 아닌 열전달 관련이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열전달 또한 관심이 있었던 분야였기 때문에 경험 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선택 한 후에는, 그 연구실의 특성에 맞게 cover letter를 작성했습니다. 이 부분이 제일 어려웠지만 가장 많이 신경을 썼던 부분인데, 설명회에서 전공관련 성적이나 경험보다는 cover letter를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cover letter 외의 나머지 8~9개 가량의 서류를 준비하느라 개강 초에 정신 없이 움직였습니다. 제출서류 중, 영문으로 작성 해야 하는 서류들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무료 첨삭 서비스를 받아 두세 번 정도 검토를 했습니다. 제출 마감일 전에 서류들을 업로드 하고,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후기를 찾아보니, 서류 심사 결과를 통보 받기 까지는 2주정도, 면접심사 후 결과는 적게는 2주, 많게는 한 달이 넘게도 걸린다고 했습니다. 저는 서류를 제출한지 2주정도가 지난 후, 서류 통과 메일을 받았고, 그 메일을 받은 후 2일만에 면접을 보았습니다. 합격 메일을 받자마자 면접을 준비했고, 면접은 Skype를 통해 IAESTE KOREA관계자 분과 보았습니다. 화상면접, 영어면접 모두 처음이라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미리 준비한 예상질문과 답변을 떠올리며 15분 정도 면접을 하고 나니, 바로 다음날 한국 대표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이 왔습니다. 그 후에는 deposit과 nomination에 동의한다는 동의서를 제출한 후, 상대국의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몇 달 후에 답변이 왔다고 했는데 저는 3주 안에 답변이 와서 최종 합격이 되었습니다. 최종 합격만 하면 한시름 놓을 줄 알았는데, 합격 후에 해야 할 일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우선, 상대국에서 요구한 서류들을 작성해서 보내고, 비자를 받은 후 비행기 표를 예매해야 했는데, 벨기에 대사관은 서울에 있고, 학교는 울산에 있어서 학기 중에 비자를 받으러 자주 왔다 갔다 할 수가 없어, IAESTE에 양해를 구한 후, 여름방학에 비자를 받고, 나머지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학교에 2학기 휴학 신청을 하고, 원래 소속되어 있던 랩을 다니며 여름방학 동안 벨기에에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직 학부생에, 랩 경험도 별로 없는 제가 벨기에에 가서 제가 받을 월급에 해당하는 만큼의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별로 자신 없던 영어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컸습니다. 결국, 마냥 출국일을 기다리기보다는 미리 그 곳에서 할 일을 파악해서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익혀가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다닐 벨기에 Ghent University의 연구실에 메일을 보내 제가 가서 하게 될 일들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담당자 Marija가 저와 함께 일할 박사과정생 Sven을 소개시켜 주셨고, Sven은 저에게 자신의 논문을 주며 미리 읽어오라는 숙제를 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담당자 Marija는 출국 전주에 있던 제 생일 날에 맞추어 축하한다는 메일을 보내주었는데, 저에게는 그 일이 큰 감동이였습니다. 제가 아직 그 랩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저는 아직 한국에 있는데, 제 생일을 기억해서 메일을 보내준 정성과, 제가 이미 그 랩의 식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전에 들었던 두려운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벨기에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늦은 밤 벨기에에 도착을 해서, 공항근처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다음날 기차를 타고 제가 근무하게 될 Ghent University가 있는 Ghent로 이동했습니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버디인 Sam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숙소까지 안내해 주었는데, 2층짜리 가정집에, 1층엔 집주인이, 2층에는 저를 비롯한 세입자 세 명이 사는 공간이였습니다. IAESTE를 하면서 다른 것들은 괜찮았는데, 숙소에 대해서는 정말 많이 실망을 했습니다. 숙소는 감사하게도 버디가 알아봐 주었지만 출국 2주일 전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어 먼저 버디에게 메일을 보내보니, 그때부터 급하게 알아보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벨기에 Ghent University의 개강일과 겹쳐 숙소를 알아보기가 어렵다는 말과 함께 또다시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불안하게 연락을 기다리던 중, 출국 1주일 전이 되어서야 숙소 한 곳을 알아봤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Job Offer에 나와 있던 숙박비보다 100유로가량 비싼 숙소였지만, 출국이 1주일 남은 시점에 어렵게 구한 숙소를 다시 알아봐 달라고 하는 것도 힘들 것 같아 그 곳에 계약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구한 숙소였는데, 도착을 해서 방을 보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낡은 집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부엌, 샤워실 등은 너무도 더럽고 냄새가 났습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제공해 주기로 한 침구류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누렇고 냄새가 났습니다. 결국 침구류는 사비로 다시 샀고, 방 곳곳에 있는 거미를 잡고, 방 청소를 하며 며칠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인턴 파견을 나가는 학생들은, '나를 위해 숙소를 알아봐 주는 버디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연락을 기다리기만 하기보다는, 미리 먼저 메일을 보내 숙소를 꼼꼼히 점검해 보시라고 꼭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낯선 숙소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니, 첫 출근을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출근을 하니, 담당자인 Marija가 연구실의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다니며 인사를 시켜 주었습니다. 제가 근무한 연구실은, 한 교수님 밑에 5명 가량의 박사 후 과정생과 10명 이상의 박사 과정생이 건축학과의 연구실과 협력을 해서 연구를 하는 곳 이였습니다. 보통 대학의 연구실 하면 한 교수님 밑에 4~5명의 석,박사과정생들이 있는 것만 보았는데, 이렇게 큰 규모의 연구실에서 근무를 하게 된 것이 신기했습니다. 한 교수님 밑에 학생이 많으면 교수님이 지도해 줄 시간이 적어 좋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근무를 하며 보니 규모가 큰 연구실의 장점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박사후과정생들은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동시에 박사과정생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 주었고, 박사과정생들끼리는 서로의 실험에 대해 많은 도움을 주고 조언을 해 주며 서로 배우는 분위기였습니다. 또, 실험장비를 직접 설계하고 설치해 실험을 해야 하는 기계과 연구실의 특성상, 실험장비를 설치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데, 이 연구실은 기술자들이 따로 있어, 쇠를 자르거나 용접을 하거나 하는 위험하고 어려운 일들은 숙련된 기술자들이 대신 해 주는 시스템이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실험을 준비하는 시간이 단축되고, 자신의 실험에 꼭 맞는 실험기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석사과정생 한 명과 함께 Sven이라는 박사과정생의 실험을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실험 하는 것을 도와주면 될 줄 알았는데, Sven과 첫 미팅을 하고 나니, 저는 이 실험의 준비과정부터 시뮬레이션, 실험장비 만들기, 실험에 필요한 프로그래밍까지 실험의 전 과정을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부담감이 있었지만, 논문을 꼼꼼히 읽고, Sven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자세히 체크하며 한 단계, 한 단계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Solid Works, LabVIEW, ANSYS, MATLAB 등 다양한 툴을 다루었는데, 일부 툴을 사용법을 몰라 그 때 그 때 tutorial을 하며 익혔습니다. 처음에는 실험 경험도 전무하고, 저런 툴들도 잘 다룰 줄 몰라서 저는 못 할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하나 해내고, 칭찬을 받고 하는 과정에서 많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단기간 머물 인턴이라고 해서 무시하지 않고, 정말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고, 자신들의 학생처럼 많이 가르쳐 주신 랩 식구들 덕분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 원래는 예정돼있지 않던 일도 한 가지 더 하게 되었는데, 그 실험에서 제 아이디어가 실험을 성공시켜 많이 뿌듯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인턴이 거의 끝나가던 11월 말에는, Marija가 연구실 사람들을 모두 모아 International Evening을 개최해 주어, 한국 문화에 대한 발표를 하고, 각자 요리해온 전통음식을 나눠먹는 뜻 깊은 시간도 가졌습니다.
제가 인턴을 한 기간에는 다른 IAESTE 인턴들이 거의 떠나고 없던 시점이라, IAESTE Committee 에서 주최하는 큰 행사는 없었습니다. 가끔 술자리 같은 모임이 있었지만 저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다른 인턴 친구를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같은 숙소 친구들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주말에는 주로 주변국가나 다른 도시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벨기에는 유럽 교통의 중심지라 불리는 만큼 기차로 영국,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일 등 여러 나라를 다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인턴을 하던 기간에 유럽에 파리 테러 등 안타깝고 무서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11월 말에는 벨기에에 심각한 테러 경보가 났고, 학교나 관공서 등은 문을 닫는 등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았습니다. 저도 이 기간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예정되어 있던 여행들을 취소하며 상황이 괜찮아질 때 까지 기다렸습니다. 이 기간에는 많이 무섭고 외롭기도 했지만 이후 보안이 강화돼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제가 머문 3개월 동안 제가 외로워 하진 않을까, 불편한 건 없을까 하며 저를 배려해주고, 정말 식구처럼 여겨 준 랩 분들 덕분에 한국에서는 절대 느끼지 못할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물론 그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였습니다. 많이 외롭기도 했고, 문화 차이 때문에 힘들기도 했고, 생활이 힘들기도 했고, 일이 힘든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턴이 끝나는 지금은 좋았던 기억만 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에게 무슨 일이 닥쳐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확실히 3개월 전의 저와는 달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체험 후기를 보며 인턴 지원을 고민하는 학생들이나, 저같이 합격 후 걱정이 되어 후기를 찾아보는 학생들이나 모두 걱정하지 말고 대담한 마음으로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분명 힘든 일도 많을 것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문화를 체험 해 보는 것은 단순히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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