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
영국, Imperial College London (KAIST 물리학과: 이무성)
- 작성일2019/07/04 15:29
- 조회 2,866
1. IAESTE와의 조우
IAESTE를 처음 알게 된 건 이번 봄 랩 친구의 추천 덕분이었다. 난 그때 여름 방학에 꼭 해외에서 싶단 생각에 사로잡혔다. 랩에서 하는 일이 잘 안 풀려서 다른 일을 하며 여유를 얻고 싶었다. 또 이번 여름은 무척 더울 거란 예보를 들어서 해외로 피서를 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영어권 국가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단 바람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매일 영어 학원을 다니면서 영어를 배웠지만, 정작 영어권 국가에 가서 써먹어 본 적이 없었다, 난 이번 IAESTE를 통해 내 능력을 발산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IAESTE 사이트에 들어가 흥미로운 인턴십을 찾아보았다. 신기한 건 유럽과 미국 외의 다른 국가에서도 인턴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인턴십 자리 중 단연 내 눈에 띈 건 영국 Imperial College에서의 인턴십 기회였다. 현미경 분야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Imperial College 한 곳뿐이었기 때문이다. 학부 연구 때부터 현미경 기술을 연구하던 내게는 새로운 현미경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곧장 1지망부터 3지망까지 Imperial College로 선택하고 바로 인턴십 지원을 하였다. 그리고 2주일 만에 지원을 마무리했다.
2. 가기 전까지 심장이 쫄깃함
지원할 때는 붙겠거니 하고 일필휘지로 지원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막상 지원이 끝난 후에 걱정이 밀려왔다. 일단 경쟁률이 얼마나 셀지 가늠이 잘 안 됐다. 그리고 IAESTE 면접을 붙더라도 인턴십 기간에서 떨어뜨릴 수도 있단 사실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든 떨어지면 지원비도 아깝고 여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행히 3월 31일 면접 전날 서류 합격 소식을 들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2차 면접 전날 합격 소식을 알려줘서 면접 준비를 밤새 허겁지겁 해야 했다.
면접은 아이패드 스카이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영어로 진행됐다. 내 얼굴만 나오고 인터뷰 질문하시는 여성 분 얼굴은 안 나와서 아쉬웠다. 그래도 서운한 맘을 감추고 열심히 묻는 질문에 대답했다. 나름 준비한 질문에서 거의 다 나와서 여유로웠다. 생각나는 질문들이 있다면 ‘어떻게 IAESTE에 지원했냐,’ ‘현재 연구 경험이 있냐’ 정도가 있다. 영어 면접이 끝나고 영어 발음이 아름다우신 인터뷰 직원께서 더 아름다운 한국어로 조언을 해주셨다. 듣다 보니 이 분께서 날 거의 붙은 사람처럼 대해주셨다. 얼핏 기억나는 조언이 있는데 이 대목에서 내가 합격할 거란 기대가 생겼다: “Cover letter를 영국에 보낼 걸 대비해 수정해야 한다. 현재 연구 활동이 어떻게 도움이 될 지를 작성해라...... 학점도 괜찮은데 지원서에 학점을 적어라…….” 조언이 끝나고 면접 경쟁률을 여쭤봤다. 2명이 인터뷰를 했고, 한 명이 최종 한국 대표로 인턴십 기관에 지원을 한다고 했다. 웬만하면 붙을 것 같았지만 직원 분께서 내게 기대감을 심어주실 수 있다는 마음에 일단 경계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일 뒤 2차 면접 합격을 했단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 없는 게 아직 최종 발표까지 한 단계 남았었다. Imperial College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지원비 값을 못 벌게 되는 것이었다. 발표도 언제 날지 몰라서 노심초사했다. 매일같이 IAESTE 연락처를 기다리다 보니 IAESTE 사무실 연락처도 외웠다. 한 달 뒤, 드디어 IAESTE에서 연락이 왔다. 결과는 최종 합격이니까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글을 쓰고 있다. 23년 외길 인생 최초로 영어권 국가에 갈 기회를 얻었다.
영국에 가기 전 가장 고통스러운 작업은 비자 발급이었다. 우선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라서 학생 비자가 아닌 취업 비자로 신청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영국에서 비자 지원 서류가 늦게 도착했다. 도착한 시기와 학교 시험 기간이 겹쳐서 비자 신청하러 갈 날짜를 잡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비자 신청을 시험이 끝나고 하게 되었다. 문제는 비자 발급까지 2주가 걸리는데 2주 뒤면 난 비행기 이륙을 준비해야 했다. 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추가 비용을 더 지불해서 빠른 비자 신청을 해야 했다. 빠른 비자 신청은 일반 비자 신청보다 두 배는 비싸니까 꼭 비자 신청은 일찍 하자. 과정은 잘 기억 안 나지만 대충 1. 비자 서류 받음 2. 인터넷으로 영국 대사관에 비자 신청 3. 스케줄 맞춰서 대사관 가서 비자 신청. 이렇게 되겠다.
3. 영국은 여름에 가면 정말 좋다.
그렇게 우여곡절 7월 1일 영국에 도착했다. ‘셜록’이나 ‘닥터 후’에서나 봤던 건물 구조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신기했다. 가장 기대됐던 건 역시 다음 날 시작 될 인턴 일이었다. Imperial에서 난 한번 공부해보고 싶던 lightsheet microscopy를 연구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내가 갈 곳에 우리 학교 같은 랩 출신인 김영찬 박사님이 계셔서 뵙고 싶었다.
그렇게 다음 날부터 난 Imperial College에서 일을 시작했다. 걱정과는 다르게 그곳의 교수님인 Christopher Dunsby (이하 크리스)와 다른 박사 친구들 모두 내게 호의적이었다. 특히 내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무래도 격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영국에서는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이름으로 부른다. 그러다 보니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좀더 다른 사람들한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같이 밥을 먹고 티타임 때 수다도 떨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내 인턴십 기간 중에 결혼한 제임스란 박사 과정 학생은 정말 얘기를 웃기게 해서 좋았다. 물론 영국 발음이 익숙하지 않아 70퍼센트 밖에 브리티시 유우우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웃겼다.
일 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교수님의 도움으로 두 달 만에 현미경을 만들어 사진까지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크리스와 일하면서 난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특히 크리스가 일 하나 하나 할 때 실수를 없애기 위해 꼼꼼히 생각하고 수정하는 성격을 본받을 수 있었다. 한 번은 현미경 설치에 필요한 합금판에 나사 구멍을 만드는 일을 했다. 내가 도면을 그려 크리스에게 보여줬더니 “내가 기억하는 바로 여기 나사 구멍은 m6가 아닌 clearance holes로 바꿔야 한다.“하며 확인을 요청하셨다. 그래서 실험실로 가 확인해본 결과 역시 크리스의 말이 맞았다. 그 외에도 현미경에 필요한 부품 준비, 현미경 촬영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준비, 촬영용 샘플 준비 등 처음부터 끝까지 크리스의 조언이 있었다. 나 또한 한국에서 계속 실험을 할 때 이렇게 실수 없이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고 싶었다. 일과가 끝나면 난 여러 가지 여가 활동을 했다. 특히 난 Hyde Park에서 달리기를 좋아했다. 영국 여름 날씨는 정말 선선해서 야외에서 운동하기 좋았다. 그 외에도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치기도 했다. 박물관은 무료라서 주말에 대형 박물관을 관람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일할 때와는 다르게 일과가 끝나면 절대 랩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바빠도 밤새 일하는 걸 자제시켰다. 일할 때는 일에만 집중하고 그 외 시간엔 자신에 투자하라는 문화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개인 여가를 보낼 때도 좋았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여가를 보낼 때 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한번은 영국 IAESTE 동문과 기성용의 도시 스완지를 놀러 갔다. 스완지는 직역하면 ‘백조의 바다’로 분위기가 인천의 상위 호환이었다. 우선 항구 도시지만 굉장히 날씨가 맑고, 도시 전체 풍경이 그리스를 닮은 듯 깨끗했다. 무엇보다 짠 내 없는 서풍이 계속 시원하게 불어와 1박 2일동안 계속 걸어도 힘들지 않았다. 그곳에서 동문들과 밤에 맥주와 칵테일을 먹으며 밤바람을 즐겼다. 그 때 술집에서 박력 있게 내게 모히또를 만들어준 여성 직원이 정말 매력 넘쳤다. 나중에 영국 가면 한 번 더 그 술집에 가보고 싶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만난 김영찬 박사님과도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일과 중엔 가끔 티타임을 가지면서 서로의 일상 얘기를 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Imperial의 한국인 동문들과 맥주 축제에 갔던 날이다. 그 날 맥주를조금 취할 정도로 마시고 Hyde Park에서 4:4로 축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공원에서 매일 축구 연습을 하는 젊은 피 친구들이 6:6을 하자고 해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순간 즐겜(?)을 하려던 우리 한국인 동문들의 입가엔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1시간 가량 숙취로 아픈 머리를 쥐어 감싸고 청바지를 입은 채로 축구를 했다. 적 팀은 우리 상황을 모른 채 봐주지 않고 짜온 작전을 펼쳤다. 그렇게 7:0으로 처참히 우리 팀은 졌다. 내 신발 밑창은 내가 하도 달려서 터져 버렸다. 적 팀은 7번 정도 넣었으면 뽀찌(?)로 한 골은 기부해도 될 텐데 쿨한 척이란 쿨한 척은 다하고 자비도 없이 집에 갔다. 입가에 상스러운 욕이 머물렀지만 박사 형님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집어넣었다.
이렇게 추억을 쌓다 보니 어느 새 7주의 인턴십이 다 지나갔다. 마지막 날 떠나기 전까지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나눠줬다. 선물은 여동생이 골라서 아기자기 했지만 나름 남자분들한테도 인기가 좋았다. 나의 지도 교수인 크리스에겐 책을 많이 읽으셔서 책갈피를 드렸다. 악수를 나누니 크리스의 눈가가 뜨겁게 붉어졌다. 내 선물이 먹혀서 기분이 좋았다. 또한 짧게 만난 인연도 소중하단 걸 느꼈다.
4. 꿀 같은 인턴십을 마치며
IAESTE를 하면서 느낀 점은 자기 적성에 맞는 인턴을 찾기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이란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광학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면서 내 커리어도 넓히고 연구 생활에 필요한 노하우도 많이 쌓았다. 실제로 인턴십을 하면서 배운 것들을 지금 연구를 하면서 조목조목 잘 쓰고 있다. 내가 이렇게 좋은 인턴십 기회를 찾은 이유는 그만큼 IAESTE에서 제공하는 인턴십 분야가 광대했기 때문이다. 내가 봤을 때는 광학 분야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밍, 화학, 디자인 분야에도 여러 인턴 자리가 있었다. 만약 해외 인턴을 준비하고 있는데 딱히 자기 적성과 맞는 인턴십을 못 찾았다면 한번 IAESTE에서 제공하는 인턴십을 확인해봐라.
IAESTE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세 개 뽑으라는 설문 조사를 받았을 때 난 바로 세 개를 썼다.
첫째는 새로운 네트워크, 둘째는 새로운 경험, 그리고 셋째는 충분한 월급이다. 첫 두 요소는 앞서 내가 언급한 내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돈이 인턴십의 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낮게 평가하지 말자. 실제로 해외에서 생활할 때 가난하게 살면 돈 걱정 때문에 일 효율도 떨어지고 밥도 못 먹고 흐지부지 해진다. 특히나 물가가 미쳐 날뛰는 영국 런던에서 산다면 돈은 안정적인 생활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IAESTE 인턴십은 그 돈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줬다. 숙박 시설도 마련해주면서 주당 20만원에 해당하는 용돈도 받아서 살기 굉장히 넉넉했다. 나처럼 다른 사람들도 IAESTE를 통해 꿀 같은 인턴십을 하면서 좋은 사람, 좋은 경험, 그리고 좋은 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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