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
세르비아, KEY TO METALS. (경희대 기계공학과: 김한열)
- 작성일2019/04/02 11:36
- 조회 2,157
IAESTE Korea를 알게 된 경로
2012년 1월까지 아쉬운 호주 어학연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오게 되었다. 돌아와서 나는 대학교 교환학생에 지원하기 위해 IELTS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험을 치기 전 교환학생 지원기간은 끝이 나버렸다. 다시 외국에 나가고 싶다는 계획이 거의 물거품이 되기 직전, 대학교 선배가 외국에 인턴을 갔다온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 전화를 하였다. 전화를 통해 선배도 IAESTE를 통해 스웨덴에서 인턴을 하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에게 한번 더 외국에 나가고 싶으면 도전 해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였다.
그래서 나는 IELTS 시험도 준비하면서, 미리 이력서와 커버 레터를 준비하고 있었고, 3월달에 대학교 홈페이지 및 IAESTE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이 뜨면서 나는 인턴으로 뽑히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인턴쉽 지원 및 승인까지의 절차
인턴쉽 기회가 있다는 것을 1월중에 미리 알았던 나는, 준비도 이에 맞춰서 하기 시작한다. 호주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기 위해 썼던 이력서, 커버 레터를 좀 더 전문적인 느낌이 나게끔 고치기 시작한다. 이 때, 나는 전화영어로 말하기, 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IELTS 공부를 하고 있었다. 물론 시험 공부도 중요하지만, 나의 경력을 써내려가는 이력서와 커버 레터를 영어로 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 끝에 그래도 어느정도 괜찮다라는 평을 제3자가 봤을 때 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준비가 된 만큼 인턴을 승인받기 까지에 절차가 결코 쉬웠던 것은 개인적으로 아니였던 것 같다. 전공을 너무 수강신청을 많이 한 나머지, 과제에, 중간고사에, 너무 바빴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인턴이 되고 싶다는 욕심과, 이에 따르는 열정이 나를 지켜주었다. 사실, 내가 처음부터 세르비아에 갈려고 했었던 것은 아니였다. 독일 탐방을 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에, 열심히 준비했지만, 최종적으로 나는 독일 인턴으로 뽑히지 못했다. 이제 IAESTE와 관계는 끝인가 조금 슬픔을 만끽하기도 전에, 세르비아에 또 다른 오퍼가 들어온 것이다.
더불어, 원래 인턴 기간이9월부터 10월로 한국 학생들에게 되게 애매한 기간이었는데, 학생을 배려해서 7월부터 8월로 기간을 수정해주겠다고 하였다. 너무나 기뻤던 나머지, 중간고사 공부는 잠깐 접고, 다시 한번 더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고쳐서 제출한 끝에 나는 세르비아 인턴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많았던 승인과정인지라, 세르비아에 도착해서 이 마음 변치말고 더욱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인턴 동안의 체험담(인턴수행, 현지생활 및 여행)
내가 인턴으로 일한 회사는 세르비아에 있는 KEY To Metals AG,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언어로 데이터베이스 탱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회사를 이해하면 쉽겠다. 기껏해야 이제 3학년 1학기를 졸업한 기계공학도가, 나름 다국적 기업에서 인턴 기회를 제공했다는게 정말 CEO가 배포가 크구나 하고 예측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출근해서 CEO를 만나자마자 감명을 많이 받았다.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으로써, 또한 거의 찾아보기 힘든 박사 학위 소유자로써, 또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세르비아 사람으로써, 나는 거의 반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싶다.
나는 7월 1일이 첫 공식 출근날이었지만, 한 주전에 일찍 도착해서, 사람들과 좀 친해질 겸 대화도 하고, 점심도 같이 먹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이 주로 번역을 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었다. 예전에 일했던 한국 사람 이메일 주소도 알게 되어, 안부차 이메일도 보내고, 카카오톡으로 간단한 메시지도 주고 받기 시작하였다. 번역을 하는 것이 익숙했던 나는, 문서 번역을 빨리 하기 시작한다. 회사 이름이 KEY To Metals에서 Total Materia로 곧 바뀐다고 해서, 홈페이지 내용을 많이 바꾸고, 추가하겠다는 직장 동료의 말을 들었다. 즉슨, 내가 영어로 된 것을 한글로 번역한 문장이 새로운 회사 홈페이지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네이버 영어사전, 구글 번역기, 번역을 계속 하면서 생긴 센스 등등을 발휘하여 최대한 매끄럽게 일을 진행하였다.
그렇지만 사람이 정말 한 가지 일만 해서는 만족이 될까? 나에게는 아니였다. 그래서 번역말고도 다른 업무를 배워서, 하고 싶다는 차원으로 IAESTE Korea에서 배운 노하우. 바로 주간 레포트를 작성하였다. 회사에서 난생 처음 레포트를 제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처음 컴퓨터 앞에서 조금 머뭇거렸지만, 용기내서 나만의 양식을 만들어 제출하였다. 돌아온 대답은 Good job, 단순한 이 한마디였지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르겠다.
주간 레포트 제출후, 회사에서 중추적인 역할, 바로 네트워크 연결 담당을 하는 젊은 직장 남성 동료가 와서 나에게 프로그램 하나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한다. 회사가 데이터베이스 창고인 것처럼, 좋은 데이터를 모으는 것은 말로 안해도 아주 중요하다. 동료가 가르쳐준 프로그램이 문서 (논문)를 스캔하여 논문에 담겨진 그래프를 우리가 직접 그릴 수도 있고, 좌표도 읽을수 있는 것이였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프로그램이 회사 소유가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사용할 수 있게 공짜라는 것이다. 회사에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이 존재하여 학생때에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을 느끼고,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하자는 차원에 많은 업무를 달라고 요청해서, 덕분에 많은 논문을 읽고, 어떠한 데이터가 정말 중요한지 공학적 센스도 조금 늘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생활면에서는 어떠했을까? 물가가 유럽이라고 생각해서 엄청 비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물가가 낮았다. 예를 들어, 맥주 한 캔에 천원도 안하며, 심지어 훌륭한 밥 한끼 먹는 것도 웬만하면 오천원 이내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사는 곳은 학생 기숙사였고, IAESTE Serbia와 연관되어 있어 숙소비는 공짜였다. 더욱더 흥미로운 것은, IAESTE Office에 찾아가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버스 교통카드를 만든 것이다. 이 카드 하나만 들고 다니면, 모든 트램, 버스가 공짜인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여행이 끝난 후, 돈 하나도 들지 않고 공항에서 기숙사까지 합법적으로 타고 올 수 있었다.
룸메이트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였다. 정말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 이름만 들어본 나라, 그리고 이름은 알지만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는 나라 등등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장소, 기숙사에서 살다보니 항상 시끌벅적 하였다. 그래서인지, IAESTE Serbia 봉사자들이 자주 찾아와 같이 술도 한잔하고, 애기도 해서 나 같은 외국 인턴들이 많이 외로움을 타지 않았다. 영어를 어느 정도만 할 줄 안다면 친해지는 데에 있어서는 무리가 없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는 세르비아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 같이 여행도 가게 되었다. 혼자 가기 막상 두려웠던 나는, 스페인 친구를 설득하여 마케도니아에 가게 되고, 일본 친구를 설득하여 크로아티아에 가게 된다. 나중에 여행을 하면서, 둘이서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진솔한 대화를 할 때, 먼저 제안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역시 나는 그 말을 들을 때 누구보다도 행복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 기타, 이탈리아에 가서 대학교 동창까지 만나니,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해외인턴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1. 다른 분들 후기와 비슷한 말일수도 있지만, 우리가 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영어 실력은 거의 다 비슷한 것 같다. 그렇지만 외국인과 두려움 없이 대화를 할 정도의 실력과, 자신감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2. 세르비아는 예전 유고슬라비아에서 전쟁 때문에 분리된 국가 중 하나이다. 즉,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조금 생활 수준이 낮다고 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후진국에서 인턴을 하는 것이 더욱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쟁은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지진을 겪은 후 극복과정 등등….
3.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인턴 기회가 있는지, 없는지 물어봤으면 좋겠다. 인터넷을 찾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하고, 문자를 주고 받아서 유용한 정보를 습득하고, 인간관계도 더욱더 돈독히 하자.
2012년 1월까지 아쉬운 호주 어학연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오게 되었다. 돌아와서 나는 대학교 교환학생에 지원하기 위해 IELTS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험을 치기 전 교환학생 지원기간은 끝이 나버렸다. 다시 외국에 나가고 싶다는 계획이 거의 물거품이 되기 직전, 대학교 선배가 외국에 인턴을 갔다온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 전화를 하였다. 전화를 통해 선배도 IAESTE를 통해 스웨덴에서 인턴을 하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에게 한번 더 외국에 나가고 싶으면 도전 해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였다.
그래서 나는 IELTS 시험도 준비하면서, 미리 이력서와 커버 레터를 준비하고 있었고, 3월달에 대학교 홈페이지 및 IAESTE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이 뜨면서 나는 인턴으로 뽑히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인턴쉽 지원 및 승인까지의 절차
인턴쉽 기회가 있다는 것을 1월중에 미리 알았던 나는, 준비도 이에 맞춰서 하기 시작한다. 호주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기 위해 썼던 이력서, 커버 레터를 좀 더 전문적인 느낌이 나게끔 고치기 시작한다. 이 때, 나는 전화영어로 말하기, 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IELTS 공부를 하고 있었다. 물론 시험 공부도 중요하지만, 나의 경력을 써내려가는 이력서와 커버 레터를 영어로 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 끝에 그래도 어느정도 괜찮다라는 평을 제3자가 봤을 때 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준비가 된 만큼 인턴을 승인받기 까지에 절차가 결코 쉬웠던 것은 개인적으로 아니였던 것 같다. 전공을 너무 수강신청을 많이 한 나머지, 과제에, 중간고사에, 너무 바빴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인턴이 되고 싶다는 욕심과, 이에 따르는 열정이 나를 지켜주었다. 사실, 내가 처음부터 세르비아에 갈려고 했었던 것은 아니였다. 독일 탐방을 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에, 열심히 준비했지만, 최종적으로 나는 독일 인턴으로 뽑히지 못했다. 이제 IAESTE와 관계는 끝인가 조금 슬픔을 만끽하기도 전에, 세르비아에 또 다른 오퍼가 들어온 것이다.
더불어, 원래 인턴 기간이9월부터 10월로 한국 학생들에게 되게 애매한 기간이었는데, 학생을 배려해서 7월부터 8월로 기간을 수정해주겠다고 하였다. 너무나 기뻤던 나머지, 중간고사 공부는 잠깐 접고, 다시 한번 더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고쳐서 제출한 끝에 나는 세르비아 인턴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많았던 승인과정인지라, 세르비아에 도착해서 이 마음 변치말고 더욱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인턴 동안의 체험담(인턴수행, 현지생활 및 여행)
내가 인턴으로 일한 회사는 세르비아에 있는 KEY To Metals AG,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언어로 데이터베이스 탱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회사를 이해하면 쉽겠다. 기껏해야 이제 3학년 1학기를 졸업한 기계공학도가, 나름 다국적 기업에서 인턴 기회를 제공했다는게 정말 CEO가 배포가 크구나 하고 예측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출근해서 CEO를 만나자마자 감명을 많이 받았다.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으로써, 또한 거의 찾아보기 힘든 박사 학위 소유자로써, 또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세르비아 사람으로써, 나는 거의 반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싶다.
나는 7월 1일이 첫 공식 출근날이었지만, 한 주전에 일찍 도착해서, 사람들과 좀 친해질 겸 대화도 하고, 점심도 같이 먹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이 주로 번역을 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었다. 예전에 일했던 한국 사람 이메일 주소도 알게 되어, 안부차 이메일도 보내고, 카카오톡으로 간단한 메시지도 주고 받기 시작하였다. 번역을 하는 것이 익숙했던 나는, 문서 번역을 빨리 하기 시작한다. 회사 이름이 KEY To Metals에서 Total Materia로 곧 바뀐다고 해서, 홈페이지 내용을 많이 바꾸고, 추가하겠다는 직장 동료의 말을 들었다. 즉슨, 내가 영어로 된 것을 한글로 번역한 문장이 새로운 회사 홈페이지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네이버 영어사전, 구글 번역기, 번역을 계속 하면서 생긴 센스 등등을 발휘하여 최대한 매끄럽게 일을 진행하였다.
그렇지만 사람이 정말 한 가지 일만 해서는 만족이 될까? 나에게는 아니였다. 그래서 번역말고도 다른 업무를 배워서, 하고 싶다는 차원으로 IAESTE Korea에서 배운 노하우. 바로 주간 레포트를 작성하였다. 회사에서 난생 처음 레포트를 제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처음 컴퓨터 앞에서 조금 머뭇거렸지만, 용기내서 나만의 양식을 만들어 제출하였다. 돌아온 대답은 Good job, 단순한 이 한마디였지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르겠다.
주간 레포트 제출후, 회사에서 중추적인 역할, 바로 네트워크 연결 담당을 하는 젊은 직장 남성 동료가 와서 나에게 프로그램 하나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한다. 회사가 데이터베이스 창고인 것처럼, 좋은 데이터를 모으는 것은 말로 안해도 아주 중요하다. 동료가 가르쳐준 프로그램이 문서 (논문)를 스캔하여 논문에 담겨진 그래프를 우리가 직접 그릴 수도 있고, 좌표도 읽을수 있는 것이였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프로그램이 회사 소유가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사용할 수 있게 공짜라는 것이다. 회사에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이 존재하여 학생때에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을 느끼고,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하자는 차원에 많은 업무를 달라고 요청해서, 덕분에 많은 논문을 읽고, 어떠한 데이터가 정말 중요한지 공학적 센스도 조금 늘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생활면에서는 어떠했을까? 물가가 유럽이라고 생각해서 엄청 비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물가가 낮았다. 예를 들어, 맥주 한 캔에 천원도 안하며, 심지어 훌륭한 밥 한끼 먹는 것도 웬만하면 오천원 이내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사는 곳은 학생 기숙사였고, IAESTE Serbia와 연관되어 있어 숙소비는 공짜였다. 더욱더 흥미로운 것은, IAESTE Office에 찾아가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버스 교통카드를 만든 것이다. 이 카드 하나만 들고 다니면, 모든 트램, 버스가 공짜인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여행이 끝난 후, 돈 하나도 들지 않고 공항에서 기숙사까지 합법적으로 타고 올 수 있었다.
룸메이트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였다. 정말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 이름만 들어본 나라, 그리고 이름은 알지만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는 나라 등등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장소, 기숙사에서 살다보니 항상 시끌벅적 하였다. 그래서인지, IAESTE Serbia 봉사자들이 자주 찾아와 같이 술도 한잔하고, 애기도 해서 나 같은 외국 인턴들이 많이 외로움을 타지 않았다. 영어를 어느 정도만 할 줄 안다면 친해지는 데에 있어서는 무리가 없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는 세르비아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 같이 여행도 가게 되었다. 혼자 가기 막상 두려웠던 나는, 스페인 친구를 설득하여 마케도니아에 가게 되고, 일본 친구를 설득하여 크로아티아에 가게 된다. 나중에 여행을 하면서, 둘이서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진솔한 대화를 할 때, 먼저 제안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역시 나는 그 말을 들을 때 누구보다도 행복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 기타, 이탈리아에 가서 대학교 동창까지 만나니,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해외인턴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1. 다른 분들 후기와 비슷한 말일수도 있지만, 우리가 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영어 실력은 거의 다 비슷한 것 같다. 그렇지만 외국인과 두려움 없이 대화를 할 정도의 실력과, 자신감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2. 세르비아는 예전 유고슬라비아에서 전쟁 때문에 분리된 국가 중 하나이다. 즉,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조금 생활 수준이 낮다고 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후진국에서 인턴을 하는 것이 더욱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쟁은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지진을 겪은 후 극복과정 등등….
3.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인턴 기회가 있는지, 없는지 물어봤으면 좋겠다. 인터넷을 찾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하고, 문자를 주고 받아서 유용한 정보를 습득하고, 인간관계도 더욱더 돈독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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